• 최종편집 2020-08-26(목)

밀라논나 "루이비통, 샤넬, 디올, 발렌시아, 이브생로랑의 역사"

명품은 그에 준하는 역사와 철학, 디자인과 기능을 갖추었기 때문

댓글 1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기사입력 : 2020.05.06 17:00
  • 프린터
  • 이메일
  • 스크랩
  • 글자크게
  • 글자작게


[유튜브 페이퍼 임지호 기자] = 패션 유튜버 <밀라논나>가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 샤넬, 디올, 발렌시아, 이브 생 로랑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 영상을 올렸다.

 

빠숑.jpg

 

명품 브랜드라고 하면 우리는 루이비통, 샤넬, 디올, 발렌시아, 이브 생 로랑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제품들의 품질 또한 훌륭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명품 브랜드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과정을 거쳐 유명 브랜드가 되었는지 알아보자.

 

 

루이비통(Louis Vuitton)

"전통적으로 아름답다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들이,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들이다."


루이비통을 탄생시킨 창업자 루이비통은 1821년, 프랑스 동부 안쉐 마을의 목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의 재혼을 계기로 14세 때 집을 나와 온갖 잡일을 하며 파리로 떠났다. 파리에 도착한 그는 상자 만드는 공장에 들어가 기술을 배웠고, 실력과 성실함을 인정받아 나폴레옹 3세 유제니 황후의 전속 패커가 되었다. 

 

이후 그는 경력을 살려 자신의 이름을 건 텀블러와 자물쇠 가방을 만들었다. 그는 작은 소품 하나까지도 직접 만들었고, 품질을 높이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덕분에 당시 유명했던 셀럽들의 가방(헤밍웨이 도서 트렁크, 오드리 헵번의 스피디백, 코코 샤넬 주문 제작에서 시작한 알마 백)을 모두 제작할 정도로 가방의 명인이 되었다. 루이비통이 유명해진 것은 바로 이 때부터였다.

 

루이비통의 가장 대표적인 디자인은 모노그램 패턴과 다미에 패턴이다. 1997년, 루이비통 회사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총괄하는 '마크제이콥스'를 영입하면서, 의상 분야까지 진출한다. 이른바 '토털 코디네이터 루이비통'이다. 2002년에는 일본의 '앤디 워홀'이라 불리는 현대미술가 무라카미 다카시를 디자이너로 영입하여, 멀티컬러 모노그램을 콜라보레이션 하면서 루이비통의 디자인을 더욱 다양화 시켰다. 

 

 

샤넬(Chanel)

"내 삶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내 삶을 창조했다"

 

샤넬은 우리나라 젊은 여성층이 가장 좋아하는 명품 브랜드 중 하나이다. 샤넬 또한 창시자의 이름이며, 원래 이름은 '가브리엘 샤넬'이다. 샤넬은 무척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병으로 일찍 사망했고, 아버지는 샤넬을 버렸다.

 

그녀는 수녀원에 지내면서 바느질을 배웠고, 성인이 되면서 수녀원에서 나와 봉제회사를 다녔다. 그리고 밤에는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다 에드워드 카펠이라는 후원자를 만나 모자 가게를 열었는데, 당시 유명 연극배우였던 가브리엘 도르지아가 자신의 연극에 샤넬의 모자를 착용하면서 상류층 여성들로부터 인기를 얻게 되었다.

 

이후 샤넬은 여성의 외의(저지 드레스)를 만들고, 스웨터나 세일러 셔츠, 미디스커트 등 새로운 라인을 발표한 패션쇼를 개최하였다. 특히 샤넬은 패션쇼 의상에 처음으로 숫자를 매겼다. 외우기 쉬운 숫자를 활용해 의상을 판매한다는 전략이었다.

 

이외에도 샤넬은 여러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며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 냈는데, 상복으로만 쓰던 검은 의상을 패션에 도입하여 드레스나 터틀넥을 만들고, 경제성을 상징하던 액세서리는 인조 진주와 크리스탈을 활용해서 새로운 디자인을 창조해 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샤넬은 자신의 나라에서 명예를 가지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 장교와 연애를 했다는 이유로 프랑스 국민들에게 외면을 당했다. 결국 그녀는 스위스로 망명하여 여생을 살았는데, 죽은 이후에도 프랑스에 묻히지 못하는 불행을 겪었다.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

"개성은 언제나 우아함의 필수 요소이다."

 

디올은 프랑스의 상류층 집안에서 태어났다. 멋쟁이였던 어머니와 여자 형제들 덕분에 어릴 적부터 여성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랐다. 그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여성의 패션도 환경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암울한 시기에 맞춰진 패션을 밝은 분위기로 탈바꿈 시키는데 초점을 맞췄다.

 

그렇게 디올은 밝은 분위기로 여성의 라인을 강조하면서 자연스럽고 풍성한 스커트를 디자인 하였다. 이때 디자인 한 패션은 프랑스 파리 여성복의 기초가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52세의 이른 나이에 식사를 하던 중, 생선가시가 목에 걸려 심장 발작으로 사망을 하였다.

 

이후 디올의 후계자였던 이브 생 로랑이 디자이너를 이어받았고, 다시 이태리 디자이너인 지안프랑코 페레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들어와 3대 디자이너가 되었다. 그는 그해 황금 골무상(프랑스의 가장 권위 있는 패션 어워드)을 수상했다. 이후 디올은 4대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를 영입하였고,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사랑을 받게 되면서 디올의 권위를 한층 업그레이드하였다.

 

 

발렌시아가(Balenciaga)

"우아함은 ‘없애는 것’이다."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는 스페인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생계를 위해 삵 바느질을 했던 어머니 영향으로 일찍부터 옷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12살 때부터 테일러 하우스(남성복 만드는 곳)에서 일을 하며, 왕실과 부유층의 취향과 문화를 배웠다.

 

스페인 내전으로 프랑스로 넘어온 발렌시아가는 1960년 에어프랑스 승무원들의 유니폼을 의뢰받는다. 그는 3천 명이 넘는 승무원들을 일일이 피팅 하며, "내가 만든 옷으로 여성들이 편해져야 한다."라는 철학으로 옷을 만든다.

 

실제로 발렌시아가 의상은 편안한 암홀과 데콜테 라인이 패인 웨딩 가운이 특징인데, 스페인을 대표하는 블랙과 화이트, 화려한 자연환경을 본 딴 의상과 스니커즈 등을 많이 발표하였다. 덕분에 유럽의 귀족들이 결혼식 예복으로 많이 찾았다.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

"패션은 변하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

 

이브 생 로랑은 1936년 당시 프랑스령이었던 북부 아프리카의 알제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몸이 약해 동급생들에게 많은 괴롭힘을 당했다.

 

14살이 되던 해, 프랑스 예술가 크리스티앙 베라르의 무대 디자인과 의상을 접하면서 이브 생 로랑은 무대 의상에 대한 꿈을 키웠다. 그리고 18살에는 국제 양모 사무국 디자인 콘테스트에 참가하여 1등을 수상하였다. 이를 계기로 크리스티앙 디올의 조수로 일하면서 자신의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스승인 디올 또한 이브 생 로랑의 실력을 인정하였는데, 디올 하우스가 발표한 80벌의 드레스 가운데, 50벌을 그가 디자인 한 드레스로 채웠다. 그러다 1957년 크리스티앙 디올이 갑자기 사망을 하면서 21살의 이브 생 로랑이 디올의 후계자가 되었다.

 

이브 생 로랑은 트라페즈 라인(어깨에서 스커트까지의 퍼짐이 사다리꼴로 된 실루엣), 피 코트(선원 재킷을 여성에게 제안), 몬드리안 드레스(네덜란드 화가 작품을 패션으로 재해석), 남성복 스타일의 스모킹 룩 등의 디자인을 만들며, 여성의 패션에 혁신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비트 족 거리 패션을 반영한 컬렉션을 발표하면서 언론의 혹평을 받게 되었는데, 그 이유로 그는 디올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그의 동성 연인 피에르 베르제의 도움으로 자신의 이름을 건 패션 회사를 만들게 되었고, 피 재킷 바지와 튜닉 디자인으로 패션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이브 생 로랑은 꾸준히 새로운 스타일을 소개하며, 이브 생 로랑 디자인만의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냈다. 그는 65세까지 현역에서 일을 했고, 2008년 6월 지병인 뇌종양으로 사망하였다.


  

이에 네티즌들은


[ 트리레몬 ]  대학에서 이런 교양수업 들었으면 재미있었을 것 같아요.


[ 치르셋 ]  내용도 내용이지만 편집 진짜 고퀄이다.


[ 송상호 ]  루이비통은 요즘 게임 캐릭터 스킨이랑도 콜라보 합니다.


[ 쿠알루핑핑 ]  논나 선생님 저는 패션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에요. 제목을 보고 홀린 듯이 들어왔는데 정신차려보니까 영상이 이미 끝나있네요. 패션의 역사도 알게 해주시고 정말 유익한 채널이네요! 오늘부터 영상 챙겨볼게요! 코로나 조심하세요. 논나 님!


[ Danielle Shin ]  브랜드 역사를 들려주는 논나님, 역시 역사를 알고 보니 재밌어용!


[ 이해인 ]  편집자님 정말. 유튜브 하면서 이렇게 유튜버 분위기랑 잘 어울리는 편집은 처음이에요. 맨날 감탄만 하다가 오늘은 더 감탄해서 댓 쓰러 왔더니 이미 편집자님 칭찬 가득..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 모두행복하세요 ]  와~ 역사의 산 증인이시네요. 대학교 1학년 때 샤넬의 별세 소식을 접하셨다니.. 신기해요 다음 영상도 기대됩니다.


[ smile smile ]  만약 싸강 영상을 이렇게 해주신다면 과제 만점 받을 자신 있습니다.


[ 브라이트룸 ]  논나 할머니의 나긋나긋하고 우아한 톤으로 역사와 스토리를 듣다보니 어렸을 때 할머니에게 옛날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어요.- 근데 내용은 학부 때 교양수업 같죠. 명품은 단순히 비싼 제품이 아니라 헤리티지와 아이덴티티가 있고 히스토리가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는 영상이었어요. 재미있는, 흥미로운 옛날이야기 자주 부탁드려요! 항상 건강하세요.


[ Ryan Andrew ]  논나 정말 세심하세요. 처음 공개되었을 때 샤넬이 나와야 할 사진에 윈저공과 심슨 부인 사진이 있길래 오잉? 했어요. 그런데도 이런 작은 오류 하나 세심하게 다듬어서 영상을 만드시는 모습이 너무 좋네요. ^^


[ 가가멜 ]  안녕하세요. 논나! 대학에서 패션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학교 수업에서 분명히 배운 것들인데 논나가 설명해주니 왜 이렇게 색다르고 또 재밌게 들리는 걸까요. 교수님들께서는 교재에 적힌 글자를 그저 읽어주시는 느낌이었다면 논나는 친구였던 옛 디자이너들과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해주시는 것처럼 생동감이 살아있어서 정말 잘 들었어요. 디자이너의 환경과 각 브랜드의 색은 연장선상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저도 이 영상을 보면서 새로운 영감이 많이 생겨났어요. 학기당 400만 원 내고 듣는 수업보다 논나의 스토리텔링이 더 유익하네요. 우리학교 반성해. 멋진 영상 무료로 볼 수만은 없어서 이렇게 댓글로 감사인사라도 남겨요. 논나 정말 감사합니다.


[ 클레임파트라 ]  와 헤밍웨이. 헤밍웨이 도서 트렁크 진짜 너무 탐나네요. 무게는 어마무시 하겠지만..


[ 이은혜 ]  방금 MBC 뉴스에서 선생님 나오셔서 너무 신기해서 사진 찍었어요.


[ IVY ]  밀라논나.. 오늘도 넘 재밌는 패션 역사 설명 감사해요.


[ 까만모서리 BlackEdge CATS ]  명품들이 가지각색의 이야기들을 가지고 누군가의 끝없는 노력 끝에 지금까지 사랑받고 빛을 내고 있는 걸보면 누군가의 끝없는 사랑을 받고, 희생으로 자란 우리들도 한 명 한명이 모두  명품이 아닐까요?


[ 서울걸kj ]  유익한 내용이 귀에 쏙쏙 들어오도록 설명해주시는 논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늘 아름다우세요. >,<


[ Taeyeon Kim ]  명품 언박싱하는 영상은 많아도 이런 전문적인 콘텐츠는 첨 봐요. 역시 논나 님의 전문성이 돋보여요.


[ 통닭노랑 ]  이분 유튜브는 단순한 패션 채널이 아니라 약간 패션에 관한 대학 교양수업 그 이상으로 유익한 무언가를 얻게 되는 채널 같음. 진짜 패션 쪽 상식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채널. 논나님 화이팅!


[ 히범 ]  단순히 예뻐 보여서 사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브랜드의 배경을 알고 사는 것은 물건을 더 아끼고 가치 있게 생각해주는 과정일 것 같아요:) 다음 영상도 기대할게요!


[ 유댕 ]  영상 보고 있으니 논나가 마치 학교에 나이 지긋하고 인자하신 선생님인 것 처럼 느껴지네요. ㅎㅎ 역사 수업 듣는 것 같고 너무 재미있어요.~!


[ 김가영 ]  너무 유익한 정보를 이해하기 쉽게 소개해주셔서 감사해요. 이런 시간은 어디 가서 돈 주고 받기도 힘들어요. 이런 시간 너무 좋아요. 밀라논나 님의 철학적인면도 분위기도 감히 말하자면 당신을 만난 건 큰 행운이에요.


[ 김유나 ]  진짜 바로 얼마 전에 명품 탄생 배경에 대해 궁금하단 생각이 들었는데 오늘 영상 주제보고 놀랐네요! 정말 유익한 영상 감사합니다.~!


[ Mingyo J ]  와~ 완전 교양수업. 진짜 논나 이야기도 대박이고 편집도 찰떡이네요.


[ Louise Jeong ]  지금 논나 님 MBC 뉴스데스크에 나오고 있는데, 제가 더 반갑고 너무 기분이 좋아서 이렇게 남기게 되었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 김지순 ]  논나 선생님, 어제 뉴스에 선생님이 나오셨는데! 너무 반갑더라고요.ㅠㅠ 앞으로도 좋은 콘텐츠 많이 보여주세요. 감사합니당 :)


[ jy k ]  마치.. 옛날이야기 듣는 것처럼 재미지고 귀에 쏙쏙~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 이야기 잘해주시네요!


[ 간만 ]  명품은 이름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스토리로 보니까 너무 재밌네요. 편집도 진짜 잘하신 듯!


[ 스파이디 ]  발렌시아가가 가장 마음에 드네요. 옷의 기능적인 면도 소중하게 생각한 디자이너 3천 명을 일일이 피팅 해서 옷 제작하는 게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었을 텐데 대단합니다. 게다가 편안함을 추구했다니.. 대박!


[ 형순철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유익한 말씀 경청하고 물러갑니다. 토요일 주말 유익하고  편안하게 잘 보내시고 아침, 저녁으로 기온차가 많이 나는데요.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하시길 빕니다.


[ OM ]  할무니~ 밀라논나 브랜드 런칭 해주세요. 오늘 스타일 너무 멋있어요.


[ 인이여 ]  뒤늦게 패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논나님께서 이렇게 명품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셔서 정말 유익한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 K K ]  샤넬은 나치에 부역했다고 알려져 있어요. 반면 디올은 레지스탕스를 후원했고요. 샤넬로 인해 돈 버는 사람이 많으니 과거사 청산이 제대로 안됐다는 썰이 있네요.


[ dong3965 ]  명품의 필수 조건은 물건 자체의 품질이나 이미지 이전에 강력한 국가 브랜드 파워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루이비통이나 샤넬이건 구찌건 저기 아프리카나 중국출신이었다면 가방 만들어 내다 파는 시골뜨기로 생을 마감했겠죠. 다른 이름의 프랑스제, 이탈리아제 명품들이 그 자리를 메꿨을 것이고요. 위의 명품들은 프랑스가 만들어내고 프랑스가 키웠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고 봅니다.


[ 김미gus ]  와~ 오늘 점심 때  음식점에서 뵈었는데! 영상처럼 멋지셨어요! 오늘 영상도 유익하게 잘 보고가요.


[ Bona ]  진짜 진짜 너무너무 재밌고 유익한 영상이었어요. 벌써부터 다음 편 보고 싶어 죽겠어요. 지금 밀라논나 책 “바다에서는 베르사체를 입고 도시에서는 아르마니를 입는다” 읽고 있는데 책도 재밌고 유익해서 하루 만에 거의 다 읽었어요!


[ Poring Santa ]  와 선생님. 진짜 선생님인거 같다. 지식수준이 와~


[ 해마 ]  이런 콘텐츠 너무 좋아요. 다른 브랜드들도 많이 다뤄주세요.


[ 하나 ]  논나님 재미있게 영상 시청했습니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들이 친근해 지네요.


[ Rani CA ]  참 지식도 풍부하시고 편안한 목소리로 설명해주고 잘 보았습니다. 입으신 옷도 완전 멋지세요.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Saerom Park ]  이렇게 빨리 수정해서 올려주시다니! 다시 또 재미있게 보았어요. 빠른 피드백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유익하고 재미있는 영상 많이 만들어 주세요.


[ Stella Kim ]  논나 9시 뉴스에서 뵈니 반가웠어요. 나만 알고 싶은 맘도 있었는데, 우리 인식 변화에 기여해주시는 거 같아 감사해요.


등의 댓글이 달렸다. 위 영상은 아래 URL로 들어가면 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iI6JlaMBEI

 

BEST 뉴스

전체댓글 1

  • 36903
룸바

멋진 여성.. 카리스마 있어 보여요^^

댓글댓글 (0)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밀라논나 "루이비통, 샤넬, 디올, 발렌시아, 이브생로랑의 역사"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